독일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유년기를 보낸 세계적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4.22~1804.2.12)'는
독실한 신자로서 영의 존재를 부정 했습니다..
하지만 1742년 대학 진학중 한명의 인물을 만나면서 영의 존재를 믿게 되죠,,
그의 이름은 '스베덴보리'로 칸트의 절친한 친구이자 세계적인 영능력자 입니다..
그는 본래 과학자로서 연금술의 권위자이며 채광학, 공병학에 통달하고 천문학에 조예가 깊으며
물리학, 동물학, 해부학, 재정학 및 경제학에도 명성을 떨쳤습니다..
또 독실한 신자이자 탁월한 성서 연구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0살때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죽은 사람들과 교신하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능력은 점점 강해져서 염력,투시력,예연,영매등 갖가지 능력으로 발전 했고 의식을
영계로 이동하는 능력도 있었다고 합니다..
'칸트'와 '스베덴보리'는 같은 방을 사용 했는데 칸트는 그에 대한 소문을 무시 했습니다..
그는 스베덴보리가 영을 본다는건 정신적인 문제점이라고 비난 했죠,,
그러자 스베덴보리는 칸트에게 증거를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칸트가 남긴 저서에 의하면 1743년 스베덴보리는 칸트와 몇몇 친구들 앞에서
16년전에 사망한 뉴턴의 영을 소환 하여
뉴턴역학의 모든 원리에 대한 강의를 2시간 동안 하게 했습니다..
평소 뉴턴역학에 관심이 많았던 칸트는 이 수업 이후 뉴턴 역학을 재편성한 라플라스의 성운설
을 발표 하는데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다양하고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본인은 자신의 이름을 알릴
생각이 없었는듯 칸트를 비롯한 친구들의 연구에 도움을 주는 일을 했습니다..
칸트도 그에 대해서 "전무후무하게 불가사의 하고 전지의 능력을 가진 사람"
이라고 평하였죠..
칸트는 이후에도 스베덴보리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루소'의 영과 교신을 하여 순수이성비판론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에도 칸트는 여러 분야의 영과 교신을 해서 종래의 종교적인 신적 형이상학을 비난하고
인간학적 형이상학을 새로 수립하죠,,
칸트는 종교론에서 신은 있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의 사상으로 사는 존재 일뿐 이며
인간의 의식을 개발 하고 자유롭게 하는것이
진정한 신을 위한 행위라고 주장 했습니다..
이후 칸트는 대학 졸업후 친우인 스베덴보리의 후원자가 됬으며 그의
영적 능력을 기록한 '영시자의 꿈'이란 책을 씁니다..
1770년 에이몬즈란 네덜란드 대사가 죽은 뒤
그 미망인은 금은 세공상으로부터 남편이 생전에 구매한 은세공품의 대금 지불을
독촉받고 당황 했습니다..
미망인은 남편이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독촉받을 성격이 아님을 알고 영수증을 찾았지
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미망인은 영능력자 스베덴보리를 자택으로 초청, 상담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남편의 영과 영적 교신을 시도 했으며,
3일 뒤 미망인과
금은 세공상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모이게 한 스베덴보리는
에이몬즈 대사가 수개월 전에 이미 그 대금을 지불하였는데
세공상이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공상이 증거를 대보라고 하자 스베덴보리는 계약 서류는
세공상이 없애 버렸지만
백작은 돈을 지불할 때 받은 영수증을 버리지 않았고
2층 큰 책상 서랍에 넣었다고 얘기 했죠..
미망인은 큰 책상을 뒤져봤지만 속에 있던 서류들 속에서도
영수증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베덴보리는 책상 왼쪽 서랍 안에 비밀 공간이 있고,
그 속의 서신들 속에 영수증이 끼어 있다고 얘기 했습니다..
모임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은 부인과 함께 2층에 올라가
스베덴보리가 얘기한 곳에서 영수증이 발견 됬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저서를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천국과 지옥의 실체'란 제목의 영계에 관한
저서를 남겼는데 심령학계의 큰 유산으로 남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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