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왕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사연이 있는 나무에 벼슬을
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중국 진시황부터 시작된 이 풍습은 왕의 위엄을 상징 하는
것으로
관직이 붙여진 나무는 실제로 관직에도 호칭이 붙여지고
낮은 직급의 사람들은 나무를 보고 인사도 해야 했죠..
그런데 이중엔 임금과 나무의 운이
함께 하는 기묘한 사연도 있습니다..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은 유년 시절은 강희맹(1424-1493)에서
지냈습니다..
강희맹의 집에는 늙은
소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는데 어린 연산군은 나무 밑에서 놀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 놀고는
하였습니다..
어느날 나무 위로 올라간 연산군이 밑으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나뭇 가지에 걸려 무사 할수 있었습니다..
후에 임금이 된 연산군은 이 소나무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연산군이 폭정 끝에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가 강화도로 귀향가 죽었는데
연산군이 죽은 날부터 강희맹의 집에 있던 정 3품 소나무는 점점 말라가더니
1년내에 말라 죽었습니다..
남한산성 동문 밖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주필암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정조가 남한산성을 살피다 잠시 쉬어 가면서 이름 붙인 바위
옆의
언덕 위에는 정조에게 벼슬을 받은 소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나무는 원래 귀목이라 불렸는데
남자에게 버림 받은 한 기생이 목을 메달아 죽은뒤
이 나무에서 노래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렸고
이에 인근의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남한산성을 살피던 정조가 이 얘기를 들고는 친히 나무를 찾아가 위로하며
벼슬을 상징하는 옥관자(玉貫子)를 걸어주고 떠나자
더이상 통곡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조가 죽은후 이 나무는 3일간 통곡 소리를 내며 몸서리를 치듯 떨다가
스스로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에 고종이 어릴 때 올라가서 놀았다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임금이 된 후 고종은 어릴 때를 생각하여 이 소나무에 종2품 벼슬을
상징하는
금관자(金貫子)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소나무 역시 고종이 죽자 갑자기 벼락을 맞아 뿌리째 날라 가 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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